[창조와 회복 11] 이집트의 신음 : 잃어버린 에덴의 영광과 죄의 속박
핵심 요약 (Core Summary)
출애굽기는 단순히 한 민족의 해방 투쟁기가 아닙니다. 에덴동산에서 온 세상을 다스리도록 창조되었던 존귀한 인간이, 어떻게 사탄(파라오)과 세상(이집트)의 노예로 전락하여 진흙 구덩이 속에서 신음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거대한 영적 자화상입니다. 우리는 이집트의 흙벽돌을 굽는 이스라엘의 모습 속에서, 구원자 없이 세상의 성공과 생존을 위해 헛된 수고를 반복하는 우리 자신의 영적 파산 상태를 뼈저리게 발견해야 합니다. 구원의 역사는 바로 이 '절망의 부르짖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왕으로 창조되었으나, 죄로 인해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잃어버린 에덴의 영광과 진흙 구덩이의 신음, 이것이 구원받기 전 모든 인간의 현주소입니다.
진리의 말씀 선포 (관련 말씀)
• 출애굽기 2:23 (마제스티판 KJV)
"시간이 지나며 그 이집트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속박으로 인해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속박으로 인해 부르짖는 그들의 소리가 하나님께 이르니라."
• Exodus 2:23 (KJV)
"And it came to pass in process of time, that the king of Egypt died: and the children of Israel sighed by reason of the bondage, and they cried, and their cry came up unto God by reason of the bondage."
[설교 본문 시작]
(도입: 잃어버린 신분증)
사랑하는 파수꾼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자신이 누구인지 이름도, 고향도 다 잊어버린 채 어느 채석장에서 발목에 쇠사슬을 찬 채로 강제 노역을 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너무나 고통스럽고 끔찍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것이 일상이 되어버리면 사람은 결국 '나는 원래 흙을 파고 돌을 나르는 노예구나'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해 버립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펼친 출애굽기의 첫 장면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출애굽기 1장의 무대는 화려한 이집트 제국입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태양 빛을 받아 번쩍이고, 파라오의 군대는 무적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제국의 밑바닥, 찌는 듯한 태양 아래 진흙 구덩이 속에는 짐승처럼 채찍을 맞으며 흙벽돌을 굽는 수백만 명의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이들에게는 너무나 기가 막힌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은 원래 노예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믿음의 조상이요, 그들의 할아버지 야곱은 천사와 겨루어 이긴 '하나님의 통치자(이스라엘)'라는 이름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성경의 첫 권인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을 따라 창조하시고, 온 우주와 에덴동산을 다스리는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왕의 DNA를 가지고 온 세상을 다스려야 할 존귀한 존재들이, 어쩌다가 이집트의 흙구덩이에서 채찍을 맞으며 파라오를 위한 창고를 짓는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을까요?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의 비참한 신음을 통해, 에덴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되어버린 우리 인류의 서글픈 자화상을 마주해야 합니다.
(전개 1: 끓는 물 속의 개구리 - 죄의 점진적인 속박)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아침에 노예가 된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마지막 장에서 그들이 처음 이집트에 내려왔을 때, 그들은 요셉이라는 위대한 총리의 후광을 업은 귀빈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가장 기름진 고센 땅을 하사받고, 풍요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렀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파라오)이 일어났습니다. 세상의 풍요(이집트)에 취해 영적인 정체성을 망각하고 안주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파라오는 서서히 본색을 드러냅니다. 처음에는 국가를 위한 건축 사업에 동원하더니, 점차 노동의 강도를 높이고, 나중에는 아예 자유를 빼앗고 강제 노역을 시키는 정식 '노예'로 전락시켜 버립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사탄이 타락한 인간을 지배하는 방식입니다. 죄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쇠사슬을 채우고 채찍을 들지 않습니다. 처음 죄는 매우 달콤한 쾌락으로, 혹은 세상의 성공과 안락함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건네진 선악과처럼 "이것을 먹으면 네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기가 막힌 거짓말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하지만 그 미끼를 덥석 무는 순간, 우리는 '서서히 끓는 물 속의 개구리'가 됩니다. 처음에는 세상의 풍요가 주는 따뜻함에 취해 하나님을 잊어버리지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우리는 돈의 노예, 쾌락의 노예, 사람들의 인정에 목마른 노예, 끝없는 불안과 우울의 노예가 되어 파라오(사탄)의 채찍 아래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400년 노예 생활은, 아담의 타락 이후 죄의 권세 아래 갇혀버린 전 인류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는 완벽한 역사적 그림자입니다.
(전개 2: 진흙과 짚 - 헛된 것을 세우는 율법과 행위의 수고)
그렇다면 그들이 이집트에서 했던 노동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출애굽기 1장 14절은 "그들이 진흙을 이기고 벽돌을 굽는 일과..."라고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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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14 (마제스티판 KJV)
"회반죽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들에서 행하는 온갖 종류의 섬기는 일을 시키며 고된 속박으로 그들의 삶을 괴롭게 하였는데 저들이 그들을 섬기게 하여 그들이 섬긴 모든 일이 혹독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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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1:14 (KJV)
”And they made their lives bitter with hard bondage, in morter, and in brick, and in all manner of service in the field: all their service, wherein they made them serve, was with rigour."
고고학자들과 역사 주석가들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의 비돔과 라암셋 같은 거대한 국고성(Store cities)을 지을 때 가장 많이 쓰인 재료는 나일강의 진흙과 지푸라기를 섞어 만든 '흙벽돌'이었습니다. 지푸라기를 섞어야 진흙이 갈라지지 않고 단단하게 굳기 때문입니다. 이 노동은 허리를 펴지 못하고 진흙을 밟아야 하는 가장 고되고 비천한 작업이었습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의 영혼을 파괴하고 그들의 번성을 막기 위해, 고의적으로 이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노동을 무한 반복하게 했습니다.
영적으로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에덴을 가꾸는 노동은 기쁨이자 예배였습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 인간의 노동은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내는 저주가 되었습니다.
파라오(사탄)가 우리에게 시키는 일도 똑같습니다. 흙(육신)과 지푸라기(곧 불타 없어질 세상의 것들)를 섞어서, 영원히 남지도 않을 이집트(세상)의 창고를 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뼈 빠지게 일하며 내 스펙의 벽돌을 굽고, 내 재산의 벽돌을 굽고, 내 자존심의 벽돌을 굽습니다. 그러나 그 벽돌로 쌓아 올린 바벨탑은 죽음이라는 심판의 불이 다가오면 한 줌의 재로 사라질 허무한 것들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인간의 삶은, 목적지도 없이 다람쥐 쳇바퀴를 도는 노예의 헛된 수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스스로의 행위(율법)와 노력으로 의로워지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진흙 구덩이의 고통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파라오의 채찍 아래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깨달은 인간의 마지막 외침. 구원의 역사는 나의 철저한 무능력을 고백하는 이 '신음'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전개 3: 구원의 시작 - 절망의 신음 소리)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반전은 어디서 일어납니까? 오늘 본문 출애굽기 2장 23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은 속박으로 인해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올라오니라."
여러분, 이것은 매우 중요한 영적 원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군대와 맞서 싸우기 위해 칼과 창을 들었습니까? 파업을 일으켰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철저히 무능력했습니다. 그들이 한 것은 단 하나,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나는 이 죄의 속박에서 내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노예입니다!"라고 신음하며 부르짖은 것뿐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죄악 된 실체와 구제 불능의 상태를 깨닫고 터뜨리는 이 절망의 신음 소리!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수백 년 동안 기다리셨던 소리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400년이나 고통받도록 내버려 두셨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타국에서 400년 동안 괴롭힘을 당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차오르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 속에 세상(이집트)에 대한 미련이 완전히 박살 나고, 오직 구원자만을 갈망하도록 준비시키시는 영적 제련의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이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구조대원의 손을 잡지 않습니다. 자신이 죄와 율법의 노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정하고 가슴을 치며 신음할 때, 비로소 우리의 시선은 흙구덩이에서 벗어나 하늘을 향하게 됩니다. 내가 내 인생의 구원자가 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그 완전한 항복(Surrender)의 순간, 그때부터 구속의 역사가 막을 올립니다.
(결론: 이집트의 신음에서 어린양의 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영적인 주소는 어디입니까?
잃어버린 에덴의 영광을 기억하지 못한 채, 파라오가 던져주는 마늘과 파에 만족하며 세상의 흙벽돌을 굽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죄책감과 중독, 우울과 상처라는 쇠사슬에 묶여 스스로를 구원해 보려고 몸부림치고 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이집트 안에서는 결코 구원의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파라오(사탄)의 결박을 끊어낼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늘을 향해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지금도 이집트의 속박 아래서 탄식하는 여러분의 신음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은, 2천 년 전 갈보리 언덕에 가장 위대한 해방의 깃발을 꽂으셨습니다.
흙벽돌을 굽던 이 노예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내미신 손길은 강력한 군대가 아니라, 흠 없고 점 없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 나를 얽매고 있는 죄의 사슬과 세상의 헛된 수고를 철저히 십자가 앞에 내려놓읍시다.
에덴의 영광을 잃어버린 우리의 비참함을 솔직하게 고백합시다.
영원한 해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갈망하는 우리가 됩시다.



